2015년도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선정한 제2회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예심 심사평
제2회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예심위원회에서는 2013년 11월 1일부터 2014년 10월 31일 사이에 출간된 도서 가운데, 비교역사문화연구소에 접수된 도서 296권을 대상으로 추천도서 선정 작업을 하였다. 이들 도서 가운데 어린이 청소년 역사책의 범주에 들어가는 도서는 약 150 여권이었다. 본 심사위원회는 2014년 2월 11일~2014년 11월 18일의 기간 동안 총 9차례에 걸쳐 개최되었으며, 이와는 별도로 네이버 카페를 통한 온라인 회의도 진행되었다. 본 심사위원회는 다음의 4인으로 구성되었다(가나다순). 안정희(북큐레이터), 이동욱(역사교사), 최정아(동화작가), 한미경(동화작가).
본 심사위원회에서 가장 고심했던 점은 어린이 청소년 도서 시장의 현실과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제정 취지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라는 점이었다. 예심대상도서 가운데, 상의 취지에 걸맞은 역사책은 10 여권에 불과했다. 이 점을 전제로, 향후의 발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추천도서를 폭넓게 선정할 것인지, 아니면 상의 제정 취지를 충분히 반영하여 추천도서를 선정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본 심사위원회에서는 결국 후자의 입장을 취하여, 어린이 부문 추천도서 3권, 청소년 부문 추천도서 1권을 선정하였다. 각 도서에 미흡한 점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4권 모두 공존과 평등의 역사서술을 모색한 소중한 결과물이라 할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국경을 넘나드는 역사의식을 확산시키는데 이들 도서가 작지만 의미 있는 파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하, 각 도서에 대한 서평을 적기하며 추천이유를 갈음하고자 한다.
[어린이 부문] <불타는 옛 성 1938>(차이까오 지음/전수정 옮김, 사계절, 2014)
가까이 있지만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로 현재에도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세 나라인 한국, 일본, 중국 작가들이 평화그림책을 기획했다. 이 책은 그중 여덟 번째로 출간된 책인데, 중국인이 쓰고 그렸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모색했다는 의도와 주제가 트랜스내셔널에 부합해서 추천한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소재를 아이들 주변에서 늘 보던 골목, 돌다리, 집, 학교 따위로 선택한 것은 대상 연령의 눈높이를 적절히 고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녀는 피난을 가야하는데 책, 책가방, 석판을 못 가져가는 게 속상하다. 전쟁은 건물을 불태우고 폐허로 만들었다. 친구들과 연을 날리며 놀던 골목,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놀았던 돌다리, 간식을 사먹기도 하고 이야기를 듣던 시장, 집, 학교가 불에 타서 없어졌다. 눈에 보이는 건물만 없어진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중했던 소녀의 이야기와 도시의 역사도 파괴됐다. 전쟁은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소녀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불타서 폐허가 된 집을 바라볼 뿐이다.
그림책에서는 그림이 글만큼 중요하다. 아이들은 그림을 보면서 상상력을 무한대로 확장한다. 글에서 표현된 것을 그림에서 찾기도 하고, 글에는 없지만 그림으로 표현된 것을 찾아내고 의기양양하게 자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글에서 표현된 것을 그림으로 찾기가 쉽지 않다. 회색의 목탄으로 흐리게 표현을 해놓아서다. 작가가 회색으로 ‘전쟁의 암울함과 무의미’를 나타내고자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림을 보는 내내 답답함이 들기도 한다.
문화의 차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아이들이 과연 잘 읽을까 하는 질문에 명쾌하게 ‘그렇다’는 답을 내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읽을수록 ‘청국장’ 같다는 느낌이 든다. 청국장은 처음에는 먹기 쉽지 않지만 먹을수록 구수한 맛이 느껴져 자꾸 찾게 된다. 처음에는 회색의 그림 때문에 그림이나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자꾸 읽다보면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들 듣는 것처럼 구수한 맛이 난다. 애정을 갖고 자꾸 읽을수록 매력을 드러내는 책 같다. 아이들에게 자꾸 읽어주어 아이들도 나처럼 반응을 하나 알아보고 싶게 만든다.
[어린이 부문]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합니다>(니콜라우스 뉘첼 지음/유영미 옮김, 서 해문집, 2014)
독일의 어느 가정, 해마다 8월 24일이면 할아버지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다리를 잃은 사건을 기념하는 파티를 연다. 아우구스트 필러는 1914년 프랑스 전투 도중 종아리에 포탄 파편을 맞았다. 괴저병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지만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수 없었고 자식을 5명 낳았다.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합니다는 10대들을 위한 전쟁반대, 평화의 가치를 말하는 역사책이다. 제1차,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원인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전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조곤조곤 들려준다.
또한 이 책은 국가 중심으로 전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전쟁의 실상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당시 유럽의 많은 보통사람들은 전쟁을 상당히 낭만적으로 생각했으며 저 넘어 어느 지역에서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자신들의 일상은 영속하리라 짐작했다. 그러나 전쟁은 이러한 막연한 상상을 산산조각 냈다. 그 어떤 정치적 명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최악의 폭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일인들은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가 닥치자 정치적 선동에 쉽게 현혹되었다. 1차 세계대전의 패망을 실패로 인식했다. 두 번째 전쟁을 통해 잃어버린 국가적 자존심을 세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국가주의적인 생각들이 모여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책에서는 독일을 포함한 당시 유럽인들이 전쟁을 어떻게 생각했으며 실제 일반인들이 겪은 전쟁의 실제가 잘 드러난다. 제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람들은 누구인지, 평범한 사람에게 전쟁은 어떤 의미인지 쉽게 설명되어 있고, 번역은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자연스럽다. 작가의 할아버지 이야기이며 동시에 유럽의 역사 이야기다. 개인의 일상과 인류의 역사 이야기다. 독일 한 가정의 기념일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가 그 어떤 장엄한 역사책보다 긴 여운으로 평화를 노래한다.
[어린이 부문] <생각이 크는 인문학 6: 역사>(최경석 지음, 을파소, 2014)
어린이들이 읽기 좋은 역사학 개설서이다. 역사의 개념, 역사의 구성 요소 및 특징, 시대 구분, 역사학습의 목적, 역사 교과서의 특성, 역사의 현재성 및 세계성 등을 재미있는 만화와 함께 매우 쉬운 용어와 맥락으로 설명하고 있어 역사 공부를 시작하는 어린이들에게 매우 유익한 책이 될 것 같다.
이 책의 백미는 국경을 초월하는 구체적인 사례이다. 예컨대, 57쪽부터 시작되는 ‘보통 사람들이 만드는 우리의 역사’라는 장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대한 제국을 지배했던 왕이나 왕조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큰 영향력을 미쳤다고 말하면서 진승․오광의 농민 봉기, 와트 타일러의 민중 봉기, 태평천국운동, 동학농민운동 등을 사례로 들었다. 이 외에도 각 장에서 다루는 주제와 관련된 구체적 사례가 풍부하고, 사례의 범위가 기존의 일국사적 관점을 탈피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이 책은 학생들이 역사라는 학문을 ‘인류가 걸어온 길’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개설서이다. 이는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시간의 흐름을 좇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설명하는 책만이 트랜스내셔널 역사도서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청소년 부문] <마주보는 한일사 3: 한일근현대사>(전국역사교사모임‧역사교육자협 의회 지음, 사계절, 2014)
제목에서 보여 주듯 상대를 배려하는 관점으로 썼다. 한국에서는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일본에서는 역사교육자협의회가 참여하여 공동으로 집필하였다. 두 나라가 서로 평화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도록 고민하여 만든 책이니 만큼, 반전과 인류애적 공감에 초점을 맞추었다.
같은 시대, 같은 사건을 다른 문학적 형식으로 다룬 일본의 만화, 청소년 소설 등이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한 점을 감안하면 그 가치가 더욱 돋보인다. 이를테면 직접 가해자나 전쟁협력자가 아니어도, 일본 민중의 피해만 강조하여 전쟁에 대한 통찰을 방해한 ‘맨발의 겐’, 국내에 "요코 이야기"로 번역이 된 ‘So Far from the Bamboo Grove’나 아직 국내에 번역이 안된 “When the Emperor Was Divine’과 비교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의 청소년은 물론 위에 제시한 책들의 작가 나카자와 케이지, 가와시마 왓킨, 그리고 줄리 오츠카에게 권하고 싶다.
역사책인데도 상처가 유산으로 남아있는 전쟁 희생자의 후손에게 치유와 감동을 준다. 마주보고 이 책을 출간한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예심위원 안정희, 이동욱, 최정아, 한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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