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28일(토)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시민답사 여섯 번째 “3.1운동, 100년의 울림을 찾아가다”가 실시되었다. 일반시민 26명, 연구소 스텝 2명이 동행하는 가운데, 사단법인 3.1운동 기념사업회의 이정은 회장님이 든든한 길잡이 역할을 해 주셨다.
일행의 첫 번째 방문지는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이었다. 얼마 전 내부공사를 했다고 하는데, 확실히 깔끔하게 정돈된 모양새였다. 특히 돋보인 것은 과거 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구성된 영상자료였다. 기념관을 돌아보는 내내 역사 기억 아카이브의 구성 방식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제암리를 나선 일행은 안성 만세고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예정보다 일정이 지체되기도 하여 우선 속을 달래기로 했다. 일행이 찾은 곳은 ‘메밀꽃바다’라는 운치 있는 이름의 식당이었다. 쌀로 유명한 안성인 만큼 무엇보다 밥맛이 좋았다. 들깨탕에서 시작한 한정식 코스는 구수한 누룽지로 마무리되었다. 다시 찾고 싶은 한상이었다.
점심을 마친 일행은 식당 지근거리의 안성 3.1운동 기념관을 방문했다. 비교적 넓은 범위에서 격렬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던 지역인 만큼 기념관의 전체 부지는 상당한 규모였다. 하지만 기념관에 비치된 자료의 수준은 그에 상응하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국책 기념사업이라는 것이 대개 외형에 치중하기 마련인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라는 인상이 남았다.
때 이른 여름햇살을 받으며 일행은 유관순열사유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는 이정은 회장님이 열여덟 여고생의 불꽃같은 삶과 죽음을 평이하게 풀어주셨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까르륵 웃음도 터뜨렸을 어린 소녀가 마주친 가혹한 갈림길들, 그리고 뭔가에 이끌리듯 그녀가 선택했던 과감한 길들. 유관순만이 아니리라. 영웅 만들기가 아닌, 선홍빛 피가 흐르는, 거친 숨소리가 배어 있는, 복잡한 속내가 묻어나는, 그런 이야기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들을 위해. 우리를 위해.
일행은 유적지 인근의 유관순열사 생가를 거쳐 마지막 방문지인 아우내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로 향했다. 준엄한 표정의 거대한 기념 동상 앞을 조잘조잘 동네 아이 서넛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고약하게 평화로운 녀석들이었다. 낯선 방문객들을 개의치 않는 아이들의 놀이를 배경으로, 이정은 회장님은 민족주의의 틀에서 벗어나 보편적 가치의 맥락에서 3.1운동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셨다. 우리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그 말씀은 동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이제는 순대타운으로 자리 잡은 아우내 장터를 그냥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길 건너편 식당에서 과하지 않을 만큼 여독을 풀었다.
인천에서 시작하여 내포, 철원, 태안, 남양주/양평으로 이어져 온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시민답사는 이제 종점에 다다랐다. 애틋한 시간과 공간들이었다.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풍요로웠던 봄, 가을로 남길 바란다.
작성자: 이세연 HK연구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