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내셔널 도시산책자:
(탈)근대의 일상>> 국제학술대회 강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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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주변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교수신문」 12월 19일자)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와 인문과학대학 미래인문학교육인증센터가 공동주최한 학술회의 <트랜스내셔널 도시산책자 - (탈)근대의 일상>이 2016년 12월 10일(토)에 한양대 인문과학대학에서 열렸다.
'유동하는 근대'에 산책과 방랑은 이제 특정한 인간 그룹의 독특한 행동양식만도 아니고 일반인들의 여가적 활동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이동을 위한 기술적
조건들이 급변하면서 어느 순간 현대인들의 삶 자체의 모드가 되어왔다. 이는 전통적인 정주문화의 아비투스를 급격히 변화시키면서,
현대 산책자 유형들 (저널리스트, 탐정, 소비자, 여행자 등)을 탄생시켰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국경을 넘는 원거리 산책도 보편화되어가면서 트랜스내셔널
산책자와 여행자의 사회문화적 함의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 주목한 이번 국제 학술대회에서는 영국, 프랑스, 캐나다, 한국 학자들이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산책자 유형들과 (탈)근대 도시의 일상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여기서 도시산책자의 다양한 현대적 변용과 탈근대
일상의 소비와 욕망의 내적 토포그래피들에 관한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다.
첫 번째 발제자였던 그레이험 길록 (Graeme Gilloch) 랑카스터 대학 교수는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라는 책으로 이미 국내에 알려져 있다.
그는 대도시의 음울한 분위기를 담은 TV느와르 드라마의 초국적 탐정을 소재로 현재적인 산책자의 함의와 국가경계의
문제를 검토하였다. 스웨덴- 덴마크, 미국-멕시코를 오가는 경계 위의 쟁점들이 탐정-산책자를 매개로 검토되었는데, 국경을 사이에 두고 각기 다른 나라에 머리와 몸이 나누어진 범죄현장의
시신에 대한 관할권을 다투는 경찰들에 대한 토론은 근대적 국경의 아이러니를 새삼 흥미롭게 반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주로 이론적 문맥에서 산책자를 검토해준 파비오 라로카 (Fabio La Rocca)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 교수는 특히 근대적 대도시 산책자의 분산적인 인지적/
미학적 특징들에 주목하여,
단순히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빈공간과 그 리듬을 산출하는 도시산책자의 창조적
보행을 강조했다. 이는 공간의 체계를 변용시키는 산책자의 잠재력인 것이다. 또한 라로카 교수는 기술과 매개된 변화에 주목하여 오늘날 소위 ‘전자 산책자’ 혹은 ‘사이버 산책자’로 불리는 네티즌으로 이어지는 산책자론의 최신 발전의 맥락을 일목요연하게
살펴주기도 했다.
이어서 서지영 박사(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대)가 식민지 시기 경성의 여성 산책자의 형상을 문학과 영화를 통해서 살펴보면서 거리의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에 관한 역사적 단면을 검토하였다. 남성 산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다루어지지 않은 여성산책자는 공적 공간에 등장하기 어려웠던 젠더 편향적인 사회와
시대의 문제를 육화한다. 주로 여성과 젠더 문제에 천착하며 『경성의 모던걸』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던 서지영 박사는 이번 발제에서 주로 <미몽- 죽음의 자장가>(1936)라는 당대 영화를 소재로 여성의 응시,
성,
도시적 욕망의 양상을 심도 있게 분석하였다.
유령적 산책자로 읽어낸 영화 「빈집」
마이클 허트 (Michael Hurt)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한국과 유럽, 북미 등의 거리사진 전통을 일별하였으며,
특히 한국의 거리에서 사진찍기의 법적,
문화적 제약에 관한 비판적 발제를 해주었다.
거리에서 작업하는 사진사도 일종의 산책자이다.
그러나 초상권과 거리 인물 사진에 대한 법적
제제 등이 강고하게 작동하면서 거리사진 작업은 상당한 제약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거리 사진작업을 하기도 하고,
이를 ‘비주얼 사회학’의 실천으로 이해하는 허트 교수는 한국 여성을 소재로 한 자신의 거리
사진 작업을 소개하였으며, 사진 작업중에 실제 경험한 에피소드들을 토대로 들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분위기를 반추할 수 있는 법적 제약과 문화적 오해 등의 문제에
관해 인상 깊은 강연을 하였다.
윤성호 한양대 교수는 김기덕의 <빈집>을 ‘유령적 산책자’ 모티프를 통해서 분석해 주었다. 동시에 한국 영화산업에서 유령적인 김기덕 감독과 이를 일치시키면서 비판적 분석을 이어갔다.
특히 여기서 ‘집’은 정주의 공간이 아니라 유령적 산책자에 의해서 열리고 관계가 맺어지는 장소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빈집>에서 견고하게 닫힌 집의 전통적 함의가 해체되고,
네트워크의 매개지점으로서 집의 함의가 강조되고
있다고 보았다. 빈집들을 전전하는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감독도 한국영화산업의 주변부에서 어떤 중심과 주변의 위상학을 파괴하는 유령적 산책의 행위를 수행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공적인 지배권력과 긴장을 드러내는 이러한 영화 안 밖의 빈집 산책에 관한 이 발제는 산책자의 정치사회적 함의를 드러내주었다.
끝으로 필자는 독일의 작가 워크위즈의 『동경 -가까이 다가가서 볼 때』(1993)라는 에세이집을 소재로 동서양을 오가는 트랜스내셔널 산책자 내면의 기억의
혼종성과 메가시티 동경의 초근대적 현장을 살펴보았다. 동경은 80년대 도시개발로 메가시티로 거듭났다. 여기서 외국인 산책자 워크위즈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길을 갔던 독일의
기억을 토대로 동경의 직장인 문화와 기계화된 거리, 과도한 상품잉여 등에 관해 날카로운 비판을 수행한다. 이와 같이 후기 산업사회 메가시티의 내부 식민화로 인해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계층, 인종, 국가 경계가 내부적으로 복합화 되는 것이다. 이번 발표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워크위즈의 비판을 토대로 여전히 강고한 경계(Frontier)가 입구(Threshold)로 전환되는 방향을 모색하였다.
‘트랜스내셔널 도시산책자’ 그들은 누구 ?
이상의 발제들을 통해서 근대의 전형적 산책자 유형들이 드러내는 인지적, 행동적 양상, 도시공간이 갖는 젠더정치적인 측면과 소비 이데올로기적 측면들 그리고
영화와 에세이들에 탐정, 사진사, 학자, 부랑아 등 변이적 형태로 나타나는 트랜스내셔널 산책자의 재현이 다양하게 검토되었다. 발표자 수가 비교적 제한적이어서 산책자와 관련된 주제를 보다 폭넓게
포괄하는 데에 다소 어려움은 있었지만, 개개 발표들은 관련 영역의 도시산책자 연구에서 가장 첨예한 지점들에 닿아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울러 산책자와 관련되어 새롭게 부상하는 ‘가상공간의 산책자’, ‘여성 산책자’, ‘유령적
산책자’를 비롯한 미디어의 산책자 재현에
대한 검토도 인상적이었다. 지역적으로는 유럽과 미국, 한국과 일본 등이 갖는 로컬, 내셔널, 글로벌한 위상학적 관계가 착종되는 사례들을 산책자의 스펙트럼을 통해서 일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번 학술회의는 무엇보다도 유동하는 현대인들의 운명과 현실을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미시적 일상 속에서 살펴본 데에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연구사의 측면에서 미시적
일상사와 일상의 사회학적 연구의 주요한 단초들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일상사와 일상사회학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국내에 활성화되지 못한 한계 영역이기도 했다. 요컨대 그것은 기존의 인문사회학 담론들이 적극적으로 포섭하지 못한 현대의 사회문화적 면면들을 ‘트랜스내셔널 도시산책자’라는 일상적 형상을 매개로 접근하는 시도였다.
물론 국내외에서 도시산책자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국내 연구는 간헐적으로 이루어졌고,
국외 연구도 근래에는 특별한 진척이 없이 답보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학술회의는 그러한 측면을 보완할 뿐아니라 산책자 연구의 경계를 초국적 차원으로 확대한 ‘트랜스내셔널 도시산책자’를 주제화함으로써 그 현재적 의미를 더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산책자,
여행자,
관광객 등 인문학적 연구에서 비교적 주변부에
속한 형상들에 대한 본격적 연구의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학술회의는 기존의 도시산책자 연구를 주제적으로 확대하고,
문학,
사회학,
역사학 등의 분야들에서 발굴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창남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비교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