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러시아 혁명의 100주년이자, 6월 항쟁의 30주년이다.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와 푸른역사 아카데미는 지난 혁명들의 궤적을 뒤돌아보고 새로운 질서를 전망하고자 시민강좌 “20세기 혁명을 다시 본다”를 공동 주최했다. 이번 강좌를 관통하는 질문은 두 가지였다. 어떤 지역적, 세계적 관계가 조우하여 혁명을 산출하고, 혁명의 결과는 다시 국경을 넘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가? 일상에서 혁명의 순간은 어떻게 출현하고, 혁명은 다시 어떻게 일상을 만들어내는가? 개별 강연마다 강조점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든 강좌가 이와 같은 ‘트랜스내셔널 관점’과 문화사 및 일상사 접근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강연 “다시 보는 러시아 혁명: 젠더, 문화, 일상”에서 한정숙 교수(서울대 서양사)는 러시아 사회에서 여전히 형성 중이었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가불로 권력을 장악한” 혁명이 어떻게 세계사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었는지 소개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러시아 혁명은 프랑스 혁명이 제시한 평등 이념을 끝까지 밀어붙인 인류사의 실험이었음과 동시에, 비서구 국가들에게는 새로운 방식의 근대화의 이상을 선물했다. 한 교수는 또한 러시아 혁명의 정치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그것이 실현하고자 했던 일상의 변혁과 예술적 시도(아방가르드 미술과 영화)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페트로그라드 노동자병사 소비에트가 공표한 명령 제1호에 내포된 반(反)권위주의(“반말하지 말라”), 그리고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를 비롯한 페미니스트 혁명가들의 가사노동 사회화 시도는 한국의 현실과도 부합하여 청중들로부터 큰 관심과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두 번째 강연 “문명사로 보는 중국 혁명: 21세기에서 20세기로”에서 차문석 교수(통일교육원)는 두 개의 100주년―2021년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과 2049년 중국 혁명 100주년―을 맞아 중국 공산당이 추진하는 강대국 프로젝트를 문명사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차 교수는 중국 공산당의 야심을 한 마디로, 혁명이 타파하고자 했던 중국 문명의 전통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로 평가했다. 혁명이 반(反)혁명으로 굴절하는 과정은 혁명 직후부터 시작되었는데, 서세동점에 저항한다는 명분으로 시도된 맹목적 산업주의(‘대약진운동’), 그러한 경향을 역전시키려다 실패한 문화혁명, 천안문 사태 진압으로 상징되는 ‘신권위주의’의 최종 승리가 그 과정이다. 차 교수는 또한 러시아 사회주의가 중국에서 ‘번역’되는 과정, 문화혁명이 유럽의 68운동과 남아메리카 및 아프리카 혁명에 미친 영향, 양안관계, 북중관계와 북미관계를 가로지르는 밀도 있고 해박한 강의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민유기 교수(경희대 사학과)는 “68운동을 과연 ‘혁명’이라고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세 번째 강연 “68운동과 일상의 혁명”을 시작했다. 민 교수는 68운동이 비록 혁명에 대한 고전적 관념, 곧 정치 체제의 급진적인 변혁이라는 기준을 충족하지는 않지만, ‘일상’의 관점에서 볼 때 68운동만큼 근본적이고 장구한 혁명의 사례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68년을 기점으로 사람들이 인종주의, 성차별, 권위주의 등 일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억압과 불의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변혁을 가능케 했던 것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근본적인 비판 정신과 인도에 깔린 “포석 아래 해변”이 있다는 발랄하고 자유로운 상상력 덕분이었다고 민 교수는 결론지었다. 이렇듯 이 강연은 ‘일상의 혁명’이라는 관점에서 68운동을 재조명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비서구의 반제국주의 투쟁에 대한 응답이었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68운동의 세계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김정한 교수(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는 “한국의 대중봉기: 항쟁과 촛불”에서 1980년 광주항쟁부터 최근의 촛불집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검토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대중 봉기가 지배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추구했다기보다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근본적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이었음을 지적했다. 80년 광주의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르며 국가와 군대가 본분을 지킬 것을 요구했고, 이러한 관점과 태도는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거쳐 촛불집회의 국민주권 주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촛불집회는 또한 80년대 투쟁을 이끌었던 대학생과 노동자, 농민에 뒤이어 새로운 주체들을 형성했는데, 청소년(세월호), 여성(강남역 살인), 비정규직 청년(구의역 사건)이 그들이다. 촛불집회와 정권교체의 열기와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 강좌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궤적을 톺아보고 국민주권의 미래를 그려보는 시간이었다.
이번 강좌에는 68세대인 은퇴자부터 직장인, 대학원생과 학부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와 직업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적극적인 질문과 논평으로 의견을 나누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강좌는 학계에서 생산된 담론을 시민사회로 환류하고 학자와 시민들의 활발한 소통을 추구하는 연구소 사회화 사업의 취지에 부합하는 자리였다. 매번 멋진 강연을 준비해주신 강연자 선생님들과 참여해주신 시민들, 그리고 실무를 맡아주신 푸른역사 아카데미 이미선 간사와 고한빈, 서석하 두 조교에게 감사를 드리며 후기를 마친다.
작성자: 박정미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