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1일(토)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시민답사 다섯 번째 “한강과 역사가 만나다: 남양주・양평 답사”가 실시되었다. 일반시민 30명, 연구소 스텝 3명이 동행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가을 하늘이 일행을 반겨주었다.
첫 번째 방문지는 홍릉・유릉이었다. 오전 10시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러 단체방문객들이 입구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볕 좋은 날 역사탐방에 나선 올망졸망 어린 방문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아마 대부분은 이런저런 선행학습의 일환으로 왔으리라. 역사의 다양한 감칠맛에 오히려 둔감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일행은 현지 문화관광해설사의 인도에 따라 우선 홍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제릉의 모양새를 짚어가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특히 일행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홍릉의 비석에 얽힌 사연이었다. 1919년 고종의 승하에 따라 명성황후를 합장하게 되어 본래 명성황후 능에 있던 비석도 홍릉으로 옮겨지게 되었는데, 그 비석에 이미 새겨져 있던 ‘大韓’이라는 문구가 문제시되었다고 한다. 한일합방 이후 ‘大韓’과 같은 문구는 금기어였기 때문이다. 참봉 고영근의 결사의 노력 끝에 홍릉 비석의 ‘大韓’은 살아남았지만, 일본 측의 묵인은 거기까지였다. 유릉에 위치한 비석에서는 ‘大韓’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홍릉에 이어 일행은 영원, 회인원을 거쳐 덕혜옹주묘, 의친왕묘를 살펴보았다. 이 일대는 보존 등의 이유로 오랜 기간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지역인데, 얼마 전 규제가 풀려 이번 답사에서도 관람할 수 있었다. 영화 덕혜옹주 등 덕혜옹주와 관련된 문화콘텐츠의 영향이 아닌가 싶었다. 영원, 회인원에서 덕혜옹주묘, 의친왕묘로 향하는 길목에는 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능에 대한 해설 등이 담긴 패널 수십 장이 진열되어 관람객들의 편의를 도모했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홍릉・유릉에서 의친왕묘에 이르는 길은 하나의 서사를 이루고 있는 셈이니, 전 지역을 통괄하는 문화관광해설이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하고 슬픈 홍릉・유릉을 나선 일행은 다산유적지 초입에 위치한 식당으로 향했다. 주 메뉴는 평양지역의 향토음식인 굴림만두전골이었다. 안주인의 시부모가 평양 출신이라는 사연이 있었다. 만두피 없이 굴려서 만든 만두는 나름 진미였다. 곁들여진 제육볶음과 정갈한 나물반찬들도 입맛을 돋우었다. 후식으로 제공된 따끈한 식혜까지 잘 짜인 밥상이었다.
점심을 마친 일행은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다산유적지로 향했다. 다산유적지에는 실학박물관 등도 있었지만, 이번 답사에서는 생가 여유당, 다산 묘역 일대에만 집중하기로 하고, 현지의 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40분가량 설명을 들었다. 다산의 박학다식함과 소박한 인품, 당색에 좌우되기도 했던 조선의 정치상황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다산유적지에 이어 여운형기념관으로 향하던 일행의 발길은 다산유적지 주차장 앞에서 10여분 지체되고 말았다. 주차장에서 빠져나오는 차량, 진입하려는 차량들이 왕복 2차선 도로 위에서 뒤엉키고 말았다. 유적지 측의 누군가가 교통정리를 해 주면 좋을 텐데, 그런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와 운전기사님, 그리고 일행 중 한 분이 내려 한참동안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틀림없이 주말마다 되풀이되는 광경일 텐데, 유적지 측의 손길이 아쉬웠다.
좁은 공간을 어렵게 빠져나온 일행은 다음 행선지인 여운형기념관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도 일행은 현지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기념관 내의 유물들을 살펴보았다. 기념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구성은 매우 알찼다. 여운형 선생 장례 때 사용된 만장이 다수 진열되어 있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그밖에 기념관 측에서는 당대의 사진을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을 무료로 인쇄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몇 가지 흥미로운 기획도 시도하고 있었다. 양평군과 기념사업회 간에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기념관 측에서는 입장료도 받지 않았다. 내실 있는 기념관인 만큼 하루빨리 분쟁이 종료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이번 답사에서는 이항로기념관을 마지막 방문지로 예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운형기념관을 나설 때는 이미 5시를 넘어서고 있다. 이항로기념관으로 향하는 데 족히 1시간은 걸린다는 점, 또 주말의 양평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이항로기념관 방문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일행을 태우고 서울로 방향을 잡은 버스는 저녁 6시 30분쯤 잠실역 앞에 도착했다.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시민답사는 이제 내년 4월의 여섯 번째 여정만을 남겨 두고 있다. 이번에도 내실 있는 답사를 갈구하는 리피터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다. 프로그램이 지속될 수 있는 넉넉한 환경이 갖춰지기를 바랄 뿐이다.
작성자: 이세연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