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민강좌의 강의는 ‘가족’과 ‘결혼’이라는 큰 주제 내에서도 크게 우리가 흔히 ‘전통적’인 것으로 여겨오던 개념들, 즉 ‘가족’과 ‘현모양처’라는 관념이 어떻게 구성되어 온 것인지에 주목한 강의와, 조선시대와 일제 식민지 시기 역사적 주체로서의 ‘여성’의 삶의 모습에 주목한 강의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시민강좌의 첫 시작을 끊은 정지영 선생님의 강의는 우리가 여전히 ‘가족’하면 떠오르는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이상적 가족의 형태는 그 시대의 이념적, 법적, 제도적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실제로 조선시대의 호적대장에 기록된 ‘가호’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선생님의 연구는 이러한 호적을 통해서 국가가 가족이라는 제도에 어떻게 개입하고 있으며, 또한 어떤 가족을 만들려 했는지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 홍양희 선생님의 강의는 현재 한국의 오만원권 지폐에 새겨진 신사임당으로 대표되는 ‘현모양처’라는 이미지가 식민지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어떻게 전통적 여성상으로 재구성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1920년대 등장한 신여성들에 의해 ‘현모양처’론은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1930년대 이후 신여성들에 대한 비판이 강화되면서 ‘현모양처’론 역시 재강화되어 이후 1960,70년대에도 산업사회에서의 전업주부론으로 확실하게 기능하였음을 설명하였다.
정해은 선생님의 강의는 임신과 출산을 통해 조선시대 사회를 읽어내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조선 전기부터 임신과 출산 관련한 의서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어 조선시대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관심과 그 중요도를 짐작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 것이었다. 이른바 “아들 낳기의 사회사”라고 할 수 있는데, 강의에서는 이와 관련된 많은 서간과 일기들의 자료가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마지막으로 소현숙 선생님의 강의는 식민지시기 이혼관련 법령들이 본격적으로 제정되면서 여성들이 어떻게 적극적으로 이혼을 청구하고 나섰는지를 보여주었다.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이혼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요인과 함께, 이혼을 거부한 여성들 또한 나약함과 무기력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한 실리적 선택이었음도 지적되었다.
이렇게 한 달에 걸쳐 매주 가족과 결혼에 관련된 다른 주제의 강의를 듣는 것이 알지 못했던 사실과 자료를 접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더 많은 새로운 질문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족과 결혼이라는 현재에도 여전히 당연시 되고 있는 제도의 역사성을 다시 깨달으면서, 이외에도 현재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것들에 대한 더 많은 질문을 가질 필요를 느꼈다. 또한 꾸준히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역사 속 여성 주체들의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거의 매번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꾸준히 참석해 주신 분들도 있었지만,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성자: 백선례 (한양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