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최근 한국에서는 상고사에 관한 심포지엄이 활발하게 개최되고 있다. 그러한 와중에 몽골 고원의 일각에서 발견된 유적(홍산문명)이 한민족의 기원이라는 담론이 그럴 듯한 이야기로 유포되고 있다든지, 해외에서 개최된 낙랑군 연구보고서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보도에 접하게 되었다. 그러한 민간의 움직임이 있는 한편, 한국정부도 2003년 중국의 동북공정이 보도된 이래 그에 대항하기 위해 고대사 연구를 적극적으로 후원해온 경위가 있다.
패트릭‧J‧기어리(The Myth of Nation: The Medieval Origins of Europe by Patrick J. Geary, 2002)는 ‘동아시아의 역사분쟁’이 발생한 것과 거의 같은 무렵, 유럽의 정체성 위기를 배경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내셔널리스트 지도자의 변론, 프로와 아마추어 역사가가 쓴 논문을 통해 1,0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옛날(서기 400년~1,000년) 역사가 학문과는 동떨어진 지점에서 갑작스레 출현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기어리는 아마추어뿐만 아니라 역사 전문가가 쉽사리 현대정치에 휩쓸려버리는 사례를 예시하고, 이와 같은 경향은 유럽 전역에서 증가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고대의 역사연구자는 정치적 논의의 장에 서는 것에 익숙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연구하는 시대가 갑작스레 논쟁의 중심이 되고, 나아가 자신의 학설이 현재와 미래에 모종의 정치적 요구를 내세우기 위해 이용당하고 있고, 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책입안자뿐만 아니라, 학자조차도 대략 이 시대에 관해 거의 지식이 없다. 그처럼 불투명한 역사시기는 유례가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 시대는 손쉽게 에스닉 내셔널리스트의 프로파간다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그들의 주장이 어느 누구로부터 비난받는 일도 없이 “나라 훔치기”의 근거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이 시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지닌 자들이 한줌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기어리는 주장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이미지를 이 시대에 투영할 수 있다면, 정치지도자들은 이를 전제로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는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어리는 경고한다.
실제로 유럽 여러 민족의 역사는 근대의 내셔널리스트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변화가 심하고 복잡하고 다이나믹한 것이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상당 부분은 루소나 헤겔의 낭만주의적 정치철학을 과학적 역사 및 인도‧유럽 문헌학과 연결시킨 에스닉 내셔널리즘을 낳은 시대, 즉 19세기의 산물이라는 점을 기어리는 강조한다.
이번 강연에서는 기어리의 위기의식에 부연하여 근대에 한국고대사가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에스닉 내셔널리즘과 연결되게 되었는가를 논함으로써, 한국 상고사 연구가 내포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검토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