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프랑스 ‘공화국’의 위선과 식민 지배의 보편성
사례 1. (아이티 독립이 선포되고 20년이 지난 1825년에 가서야 비로소 프랑스가 독립을 인정하면서) 프랑스는 아이티가 독립함으로써 식민지 이주민들이 잃게 된 플랜테이션 농장에 대한 보상으로 1억5000만 금화 프랑의 보상금을 지불할 것을 신생국가 아이티에 강요했다.
사례 2. 프랑스 대혁명 백주년이 되는 해인 1889년에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 때 프랑스 정부는 막 건설된 에펠탑 발치에 흑인 촌락과 카나크족의 촌락을 재현하는 일을 주도했다. 흑인 촌락에는 세네갈과 가봉 출신 아프리카인이 배치되었으며, 카나크족의 촌락에는 뉴 헤브리디스 제도 등의 식민지 출신 주민들이 배치됐다.
지금 보면 정말이지 기가 차고 말문이 막히는 일이지만, 위의 두 이야기는 한국인들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역사적 배경만이 바뀌었을 뿐 동일한 사태가 일정한 시차를 두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도 벌어졌던 것이다. 일본은 프랑스로부터 근대화만이 아니라 식민화의 논리와 방식도 모방하고 있었다.
1953년 한·일 간 국교정상화를 위해 이어지고 있던 제3차 한일회담에서, 일본 측 대표 구보다 간이치로는 “일본의 36년간 한국 통치는 한국 측에 유익한 것이었다”고 발언했다. 이 망언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른바 식민지 시혜론의 원형은 바로 프랑스가 아이티에 요구한 독립보상금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사례 1)
1903년 도쿄에서 열린 제5회 내국권업박람회의 학술인류관과 1907년 도쿄권업박람회의 수정관에는 조선인이 직접 전시됐다. 식민지민의 야만성을 드러내기 위해 유색인종을 박물관에 전시하는 악명 높은 ‘인간 동물원’ 역시, 프랑스 대혁명을 기념하는 파리의 만국박람회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사례 2)
프랑스의 권위 있는 식민사 연구자인 질 망스롱이 쓴 <프랑스 공화국 식민사 입문-인권을 유린한 식민침탈>(우무상 옮김·경북대출판부)에는 위의 것과 유사한 수많은 사례가 등장한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프랑스 공화국이 식민지에서 자행된 범죄의 피해자들에 대한 공화국 자체의 도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보편적인 인권윤리의 수호자로 자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망스롱은 프랑스 식민지 개척의 역사를 식민화사업에 대한 정당화 메커니즘 혹은 그 인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착실하게 추적한다. 처음에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은 노예제도라는 야만적인 제도를 타파하기 위해서 다른 민족의 땅을 식민지로 삼아 개입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그들은 열등민족을 문명화하는 것이 우등민족의 사명이라는 논리, 곧 문명화 사명의 논리를 개발했다. 이어 식민지민들이 진정으로 미개인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상을 개발함으로써 문명화의 논리를 옹호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인종 전시였다. 이로써 인권과 자유, 평등, 우애를 표방하는 프랑스혁명의 대의는 공화국의 위선으로 전락했다.
프랑스 식민지는 제2공화국과 제3공화국 시절에 가장 넓게 확장되었다. 이후 식민화사업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은 방법은 오직 하나, 식민지에서 저질러진 각종 범죄를 거짓말로 은폐하는 것뿐이었다.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도 문명화 사명의 논리에 찬동하고 있었다. 유명한 실존주의 문학자 카뮈가 알제리의 독립에 반대한 것처럼.
근래 영국정부는 1950년대 식민통치에 저항하던 케냐의 독립운동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네덜란드 정부 역시 2차대전 이후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가 처형된 사람들에게 사과했다. 아직은 지극히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전지구적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상 요구는 급속하게 확대되어 갈 것이다. 이 책은 이를 위한 인도자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