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의 눈에 비친 조선 밖 모습은 어땠을까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 이승원
임광명 기자 다른기사보기
나혜석(1896~1949)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서양화가이자 작 가로서 재능을 가졌지만 여성으로서 그 재능을 빛낼 수 없어 방황하다 결국은 행려병자로 세상을 떠났던 이. 일제 총독부 관료의 부인으로서 아쉬울 것 없는 삶을 살 수도 있었던 그가 그런 파란 많은 삶을 살았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세계일 주였다.
1927년 6월 19일 부산을 출발해 1929년 3월 12일 다시 부산 에 도착하기까지, 1년 8개월 동안 중국과 유럽, 미국, 하와 이를 잇는, 당시 조선 여성으로서는 유례가 없는 다이내믹한, 여행 후 그는 이런 글을 남겼다.
나혜석·민영환·유길준… 김관·이순탁 등 20여명 앞서간 지식인들의 시각 문화 충격 엿보는 재미
구미만유 기간 1년 8개월간 … 단발을 하고 양복을 입고 … 연구소를 다니고 … 사랑의 꿈도 꾸어보고 장 차 그림 대가가 될 공상도 해보았다. … 조선 와서의 나의 생활은 … 깎았던 머리를 부리나케 기르고 … 긴 치마를 입었다. … 시가 친척들은 의리를 말하고 시어머니는 효도를 말하며 시누이는 돈 모으라고 야단이다. … 아아, 자유, 평등, 박애의 세상 파리가 그리워.
나혜석으로서는 세계 여행을 통해 조선 이외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삶 을 살게 된 것이다. 여행이란 무릇 그런 것인데, 나혜석의 경우처럼, 은자의 나라로 불렸던 구한말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바깥 세상의 충격은 특히 컸을 터이다.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이승원 지음/휴머니스트/1만6천원)은 그 충격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민영환, 유길준, 윤치호, 이광수, 최남선 등 유명인에서 음악평론가 김관, 고고학자 도유호, 경제학자 이순탁 등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까지 20여 인이 등장한다.
어떤 이들은 부러움으로 그들을 바라봤고, 나아가 제국주의 국가의 시선을 답습한 이들도 있었다. 북한 최고 인민회의 의장을 지냈던 허헌(1885~1951)은 미국과 독일의 거대한 기계공장을 보고 경탄해 마지 않았고, 유길준은 서구적 근대화를 따라잡는 것이야말로 조선 지식인들의 마땅한 사명이라고 여겼다. 민영환은 싱가 포르 원주민들을 보고는 "추하고 더럽다"며 스스로 문명인임에 자부했으며, 최남선은 서구의 근대식 공원을 문명개화의 상징으로 갈망했다.
하지만 다른 이는 퇴폐와 환락의 서구 도시 문화를 비난하기도 했다. 나혜석은 "영국의 넉넉한 살림이 모두 식민지에서 착취한 것"이라고 단언했고, 고종의 명을 받고 종사관으로 일본을 방문한 유학자 박대양은 서구 식으로 변한 일본의 연회 문화를 두고 "사람을 현혹(眩惑)하게" 만드는 몹쓸 것이라 비판했다.
그런 그들에 대해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는 지은이는 "긍정·부정을 떠나 당시 조선인들 의 눈에 비친 세계의 모습을 엿보는 즐거움을 맛보라"고 권한다.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 16면 | 입력시간: 2009-12-05 [16:27:00]